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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디 재직중 빌런 후임을 만나다

by 보물사냥꾼_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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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6 - [분류 전체보기] - 웹디자이너 취업부터 퇴사까지 경험담

 

웹디자이너 취업부터 퇴사까지 경험담

컴퓨터 학원 출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종으로 옮겨보고자 취업 사이트를 뒤지던 중 쇼핑몰 웹디자이너 구인글이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는걸 보게 되고 취업하기 쉽겠다 생각하여 내

5.davy100.com

제가 근무한 팀과 다른 팀 포함 신입사원 5명을 만나봤고, 그중에 2명이 저와 같은 웹디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첫 번째 후임이 빌런이었고 이 친구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특이하네?

이 친구의 습관중 하나가 씁~특이하네?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퇴사를 하게 되어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려주면 그때마다 씁~특이하네?라는 말을 하여 저의 혈압 관리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처음엔 습관이겠거니 하며 넘겼지만 그것도 한두 번... 하루에 몇 번씩 매일 들으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해 도대체 뭐가 그렇게 특이하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다는 말이 학원에서 배운거랑 달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때다 싶어 "그렇다면 학원에서 배운 대로 작업해보세요. 굳이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 하지 않아도 결과만 같으면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일부러 진행도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네이트온으로 소통을 하였고 작업이 오래 걸린다 싶으면 막히는 게 있는지 물어보고 제가 해결해주곤 했지만 이번엔 본인 스스로 하게끔 일부러 내버려두었습니다.

 

약 3시간이 흘러 네이트온으로 쪽지가 옵니다. '이거 잘 모르겠는데 잠시 오실 수 있나요?'라고 말이죠. 가서 보니 크게 어려운 건 없었지만 응용을 하지 못해 해결하지 못했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해 주고 "이런 식으로 하면 되는데 혹시 다른 방법 있으면 그렇게 하셔도 좋아요."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습니다.

 

노트 좀 사세요

인수인계를 하는데 필기를 전혀 하지 않는 친구였습니다. 말투뿐 아니라 행동마저 저의 저혈압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죠. 그럼에도 저에겐 이 친구가 필요했기에 웃으며 또 알려주었습니다. 넌지시 노트를 사면 참 좋겠다는 말과 함께요. 그런데 이 친구가 필기를 안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텍스트 문서를 열었는데 거기에 뭐가 있었냐면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글로 쫙 적어 놓았더라고요. 이전 학원 썰에서도 적었지만 저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걸 왜 굳이 적지...?라는 의문이 들었죠. 아무튼, 똑같은걸 계속 물어보고 그때마다 노트를 사면 좋겠다는 저의 말이 반복되며 목소리가 점점 커졌나 봅니다. 점심시간에 팀장님과 식사를 하는데 "요즘 목소리가 커지신 거 같아요" 라며 저에게 웃으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2주 차에 들어섰고, 아직도 노트는 사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친구였죠. 사람은 이렇게 뚝심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지난 글에서 쓰지 못했던 게 있었는데, 제가 근무한 회사는 엄청나게 조용합니다. 어느 정도냐면 키보드랑 마우스 소리만 들리고 전화가 오면 전화받은 제 목소리를 전 직원이 다 듣습니다. 경영지원팀 과장님께 뭔가 요청하러 갈 때는 자동으로 asmr을 하게 되는데, 이건 저만 그런 게 아니고 제 뒤에 왔던 신입사원 5명 모두 과장님께 asmr을 해서 귀를 즐겁게 해 드렸습니다.

 

이렇게 회사가 조용하다 보니 전 직원이 이 친구가 노트를 1주일이 넘도록 구매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 보다 못한 부장이 화장실 가는 길에 "야 노트 좀 사라" 라며 짜증 섞인 말을 하고 가니 그날 점심시간에 바로 사 오더군요. 적당한 짜증을 내주는 건 행동력에 도움을 주나 봅니다.

 

전화 못 받습니다

신입사원 중 1명을 제외하고 전부 전화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그중에 1,2번째로 받은 신입사원이 그랬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친구가 3번째입니다. 아직 전화받는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친구는 입사하기 전이었다는 말이죠. 그렇게 저는 막내가 아님에도 전화를 꾸준히 받았습니다.

 

다른 2명의 신입 친구들에겐 전화 받는 요령이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사이도 좋았습니다. 이 친구는 처음부터 "저는 전화 못 받습니다"라고 못을 박았죠. 씁~특이하네?라는 말이 나올 뻔했습니다. 은근 중독성이 있더군요. 알게 모르게 본인의 이미지가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건지 아니면 난 여기서 더 내려갈 이미지가 있다는 걸 어필하려 했던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퇴사하는 그날까지 전화 한 통 받지 않았습니다. 군필이라며...

 

연락이 안 되네요

저에겐 이 친구와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잊을 수 없는 경험 2가지와 동시에 이 친구가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죠. 마감할 작업이 있어서 바쁜 날이 이제 막 시작할 때였습니다. 항상 6시 칼퇴를 하였던 그 친구는 야근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6시가 되자 퇴근하려 자리를 일어서자마자 "어디 가요?"라는 팀장님의 말에 "퇴근..."이라고 답하였고 "작업 다 했어요? 보여줘요"라는 말을 듣곤 다시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인수인계가 제 업무였기에 "퇴근하겠습니다(ㅋㅋ)"라고 말하고 무사히 퇴근을 했습니다. 퇴근하는 길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옵니다. "xx병원으로 바로 올 수 있어?"라는 내용이었고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삼촌이 엠뷸런스에 실려가 지금은 의식이 없고 돌아가실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병원에 갔고 식구들이 이미 다 와있었고 코로나가 유행이었기에 2명씩 방진복을 입고 들어가 상태를 보고 왔습니다. 가족분들이 다 여기에 있기는 어렵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주겠다며 일단 귀가하시라고 하여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저희 집에 몇 명이 와서 늦은 저녁을 먹었고 10분 정도 지나서 뭔가 찌릿한 느낌이 왔습니다.

 

익숙한 이 느낌은 바로 요로결석이었죠. 전 요로결석 4번에 걸려본 운이 없는 사람입니다. 덕분에 느낌이 살짝 오면 바로 병원 가서 "요로결석 같은데요"라고 말하면 원장님이 "어떻게 아세요? 일단 찍어보죠"라고 답하셨고 언제나 "요로결석이 맞네요"라는 진단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좀 세게 와서 병원에 미리 갈 틈이 없이 바로 무릎 꿇고 울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언제까지 아파할 순 없기에 서둘러 비뇨기과를 찾아보았고 다행히 24시간 운영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잘 안 받으시더라고요. 바쁘신가 보다 하고 2번째 걸어서 전화 연결이 되었고 굉장히 졸린 목소리로 "50만 원인데 하시겠어요?"라고 하시길래 주간에 가면 가격이 좀 싸냐고 묻자, 그렇다고 하시길래 그러면 주간에 가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세요 픽~" 하며 살짝 비웃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서 바로 전화 끊고 여긴 가면 안 되는 병원이구나 싶었습니다.

 

근처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소변검사, 엑스레이를 찍었고 링거를 맞고 있던 중 심정지 환자가 실려옵니다. 병원에는 아빠가 데려다주시면서 옆에 같이 있었고 형은 오지 말라고 했는데 굳이 오겠다며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있는 상황이었죠. 심정지 환자분은 결국 돌아가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호흡기 질환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응급실에 있던 분들은 상관이 없는데, 보호자 대기실에 있던 형이 돌아가신 분의 보호자들과 같이 있던 바람에 자가격리를 권고받게 됩니다.

 

바로 팀장님께 문자로 '늦은 시간이라 어쩌고 저쩌고 자가격리 권고받았습니다'라고 보냈고 오전 6시쯤에 재택근무 해도 괜찮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재택근무를 하는데 사실 제가 할 일은 없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그 친구의 어시만 해주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영화 한 편 보면서 네이트온 쪽지 오면 답하면 되겠구나 싶었죠.

 

출근은 9시까지인데 9시 20분쯤에 네이트온 쪽지가 옵니다. '이 친구 연락이 안 되네요' 라며... 이어서 '이런 경우엔 보통 퇴사 했다고 보면 되는데 10시까지 지켜보죠'라는 팀장님의 쪽지를 받았고 결국 런 한 게 확정되어 제가 마감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업무 시간 안에 끝났고 5시쯤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고 6시 퇴근이지만 5시 20분쯤에 팀장님께 사정 설명 드리고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요로결석 통증은 완화된 상태였죠.

 

그렇게 이 친구와 인연이 끝이 났습니다. 어차피 도망갈 줄 알았더라면 노트 사라고 짜증 한번 내볼걸... 하며 후회하곤 했습니다. 이후에 팀장님과 식사 중에 이 친구가 좀 이상했다는 말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왜 이 친구를 평생 잊을 수 없는지 아시겠죠? 좋지 않은 일들이 한 번에 3개가 왔으니 이걸 어떻게 잊겠습니까.

 

결국 다음 후임 구할 때까지 근무하기로 했는데 회사 측의 우려와 달리 2주 만에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인수인계를 무사히 마치고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퇴사하는 퇴근길에 전화 못 받던 신입사원에게 감사 메시지가 왔고 제 후임으로 온 신입사원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기프티콘을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는데 다른 썰이 생각나면 그때 또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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